화요일, 5월 09, 2006

연개소문과 5자루 칼

2004-01-12 02:59 작성 caesar4

[칼 5자루는 보통의 관습이었습니다]


≪翰苑≫ (卷 30, 蕃夷部 高麗)을 보면, 고구려의 일반 남자들은 누구나 몸에 칼 다섯 자루와 숫돌까지 차고 다닌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보면 연개소문이 다섯 자루의 칼을 찼다는 것은 위압감과 공포감을 주었다는 면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다만 그는 고구려의 보통 남자들이 하는 대로 그렇게 했을 따름이다.
또 고구려의 일반 남자들이 칼을 많이 차고 다닌 것은 여러 용도의 칼을 차고 다닌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는 초기 산악지대에 입지하여 항상 식량이 부족하였다.
이에 수렵을 통한 육식이 많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사냥에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사냥후 이루어지는 짐승의 분배나 조리등에 필요한 칼이 보통 2~3종으로 볼때 일반적인 고구려 남자들이 차고다니는 칼 5자루는 전투용 칼 2~3(공격1, 방어1, 기타-투척용 혹은 예비)자루와 사냥이나 기타 다른 목적의 칼 2~3종으로써 충분히 5자루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추측컨대 그 종류로는 마상 전투용 장검(흔히 말하는 서양의 long sword, 우리나라의 경우 대략 환두대도 등으로 잘 알려진 大刀종류)1자루, 백병전용 단검 1~2자루 등을 들 수 있다. "연개소문이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다니고 말을 타거나 내릴 때 땅에 엎드린 무장들의 등을 밟고 오르내려 백성들이 두려워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삼국사기는 그 기본 토대가 중국의 기록임에 따라 중국의 입장 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로 볼때 위의 기사는 唐 태종 이세민에 의한 연개소문의 인간성에 대한 여론조작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연개소문의 국권 전횡과 이에 따른 태종의 고구려 침략에 앞선 정보 활동인 것이다.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다니는 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모습이었고, 명예나 권위를 상징하는것은 아니었다.
또한 연개소문에 대한 여러가지 비방성 기록들은 당시의 고구려 남자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헤게모니 장악과정에서 연개소문이 보여준 잔인함 등을 연개소문 개인의 인간성에 대해 여론을 조작한 당태종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에서 보여지는 잔인한 행동이나 공포 분위기는 비단 연개소문만의 것이 아니다. 당태종의 경우만 들어보아도 자신이 제위에 오르기 위해 골육상쟁을 벌였다.
결국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일반 남자일뿐이고, 단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현재까지 존재하는 역사서를 남긴 唐에 적대했다는 이유로 잔인무도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만약 고구려의 역사서가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그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용출처 : 연개소문에 대한 재평가(서병국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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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평화 우주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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